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플로피 디스크 (문단 편집) ==== 1980~1990년대 ==== [[패미컴]]과 마찬가지로 이걸 보고 다룬 사람과 아닌 사람을 [[1970년대|1970]]~[[1990년대|90년대]]생과 [[2000년대]] 이후 출생으로 갈라놓을 수 있다. 1990년대 초반생의 경우, 말랑말랑한 5.25인치 모델은 단종되어 사라져가던 모델인지라 당시 기준으로 집에 486 계열 컴퓨터라도 있던 경우를 제외하면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딱딱한 3.5인치짜리는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 2000년대 중반까지 남아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1980년대생부터 1990년대생은 어린 시절에 던지고 논 기억이 날 것이다. 3.5인치 플로피 디스크의 위 쪽에 달려있는 슬라이드를 당겼다 놨다 하면서 놀기도 했다. 한국에서 널리 퍼진 플로피 디스크는 IBM PC XT 호환 기종 컴퓨터 시절에 주로 사용한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중 360KB짜리 2D와 1.2MB짜리 2HD. 2HD는 인텔 80286 및 IBM PC AT 호환 기종 컴퓨터 시대로 넘어온 뒤부터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씩 사용하고 있는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도 많이 사용했다. 이렇게 세 가지 형태'''만''' 널리 퍼져 상업화 되었으며, 좀 마이너한 것까지 치면 [[MSX]]에서 쓴 3.5인치 2DD 플로피 디스크나 애플에서 쓴 1D, 2D 플로피 디스크도 있다. 3.5인치 2DD는 IBM PC에서도 쓸 수는 있지만 대부분 2HD로 바로 넘어갔기 때문에 거의 쓰이지 않았다. 이 720KB짜리 2DD는 IBM PC에서 1.44MB짜리 2HD로 포맷해 사용하기도 했다. IBM PC 호환 기종용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에서 양자의 구분은 플로피 디스크에 있는 구멍[* 쓰기 방지 스위치 반대쪽에 있다.]으로만 이루어졌기에 해당 위치에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간단히 2HD로 변신이 되었다. 하지만 자성체 밀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포맷해 데이터를 꽉 채워 저장하는 경우에 신뢰도가 떨어졌다. 자성체 밀도가 낮은 매체에 일부러 고밀도로 데이터를 저장하면 대놓고 날려먹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아주 급할 때 임시로 사용하는 꼼수 정도로만 사용했다. 반대로 2HD가 대중화된 이후 2DD 플로피 디스크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신시사이저]] 등 구형 기기에서의 사용을 위해 종종 2HD의 구멍을 막아 2DD로 변신시키는 경우도 있다. 2DD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있는 전용 기기는 연식상 대부분 해당 검사를 하지 않지만, PC에서 미리 포맷을 해둬야 한다거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신형으로 교체했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런 꼼수가 필요할 때는 여전히 나온다. 이밖에도 기타 여러가지 형태의 플로피 디스크가 더 있었지만, 그 나머진 거의 서버 백업용 등의 '''특수 업무 목적'''으로만 사용되었다. MSX의 경우에는 독립형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가격이 너무 비싸 이것이 잘 보급되지 않았다. 당시 일본 MSX 제품들은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기본 사양으로 달려 있었으나 한국에서는 별도로 구입하여야 했고, 가격 또한 터무니 없이 비쌌다. 1985년 당시 대우전자의 5.25인치 360KB 싱글/더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가격이 각각 50만 원과 80만 원에 육박했다. 당시 애플 II 호환기 전용 5.25인치 싱글 드라이브는 20만 원 전후. 그나마 1989년쯤 되면 MSX용 3.5인치 720KB 더블 드라이브(40만 원 가량)가 출시되어 5.25인치 드라이브를 대체하게 된다. 그래도 MSX II용 RGB 모니터와 비슷한 값. 그 당시 대기업 대졸 초임이 30만 원이었는데...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아마도 200만 원을 훌쩍 넘는 어처구니없는 가격이었다. 이렇게 플로피 디스크가 잘 사용되지 않았으니, 응용 소프트웨어는커녕 게임조차도 매우 비싼 롬팩을 쓰거나 혹은 느린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해야 했다. 그나마 한국 MSX 기종의 사실상 최종판인 대우 X-II가 나오면서 내장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덕에 조금 숨통이 트이며 플로피 디스크 사용자가 크게 늘어난 정도. 하지만 X-II 자체가 비쌌기 때문에, 컴퓨터 학원 등에서는 기존 기종을 쓰면서 외장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한두 개 갖다놓고 여러 PC에서 돌려쓰는 등의 눈물나는 작업을 해야 했다. 당시 [[IBM PC 호환기종]] 쪽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아서, [[TG삼보|삼보컴퓨터]] 초기 제품의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가격이 30만 원이었는데... 본체 모니터 모두 더하면 150만 원 가까이 되는 고가였다. 다만, 이 당시에는 PC 가격 자체가 전반적으로 현재보다는 비쌌다. [[IBM PC|IBM 5150]]은 초기 가격이 그 당시 미화로 1,500~3,000달러였다. 일례로, 1990년대 중반 미국 컴퓨터 업계의 큰 이슈가, 날로 떨어지는 컴퓨터 본체값이 500달러를 하향 돌파할 것이냐였다. 한국에 호환 기종으로 널리 퍼진 [[Apple II#s-3.2|애플 II 플러스]]는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탑재하고 나왔는데, 역시 이것도 별도 구입이었다. 본체에 달려있지 않고 외장으로 달려 있는 형태. 그러나 애플의 경우에는 [[세운상가]] 조립으로 많이 퍼졌기 때문에 MSX보다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가격이 꽤 저렴하게 나왔다. 1987년경에 약 30만 원 가량이면 Apple II+ 본체와 녹색의 단색 모니터,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까지 살 수 있었다. 이 값이면 MSX는 본체와 카세트 드라이브밖에 못 사고, 모니터는 TV에 연결해 써야 했다. 대신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의 가격을 낮추려고 하다 보니 단면 전용 드라이브[* MSX 등과는 달리 오래된 기종이라서 애플 II용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처음 출시될 시절에는 단면 사용 디스크만 있었고 이게 사실상 표준화된 것. 애플 II뿐 아니라 코모도어 64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도 단면 헤드.]였고, 용량도 2D 360KB의 절반도 안 되는 114KB만[* 256 바이트/섹터×13 섹터/트랙×35 트랙. 애플은 Disk II를 저렴하게 만들려다 보니 성능이 뒤떨어져 안쪽 트랙에서 오류가 많았고, 애플은 이를 감안해 애플 DOS는 40 트랙 중 35 트랙만을 사용했다. 또한 트랙의 밀도도 떨어뜨려 트랙 당 13 섹터만 사용했는데, 그러다 보니 용량이 저렇게 되었다. 40트랙을 다 쓰려면 별도의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애플 DOS 3.3 이후로 업데이트하면 트랙 당 16 섹터로 밀도를 높여 140KB까지 사용할 수 있다.] 사용했다. 그래서 플로피 디스크의 복사 방지 탭을 반대쪽에도 펀치 등으로 뚫어 플로피 디스크를 뒤집어 넣어 뒷면에도 데이터를 기록해 사용했다.[* 뒤집어 넣으면 자성체의 회전 방향이 반대가 되므로 앞뒤를 다 쓰면 쓸 때마다 회전 방향이 바뀌는 탓에 디스크 내부 부직포의 먼지 흡수가 잘 안되고 흡수한 먼지도 도로 드라이브에 떨어지는 바람에 플로피 디스크나 드라이브의 수명이 크게 단축된다.] 이 기억을 가지고 있던 일부 유저들이 IBM PC용 플로피 디스크에 똑같은 일을 벌이다가 데이터를 날려먹기도.. [* 국내에 보급된 IBM PC 호환기종에 딸린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는 이미 양면 지원이 기본이었다. 자동으로 헤드가 앞뒷면을 다 썼다. 이걸 수동으로 뒤집어 삽입하면 플로피 디스크 입장에서 자성체의 회전 방향이 반대가 되고, 이 상태에서 기록하면 데이터가 파괴될 것 같지만, 그전에 DOS가 디스크를 인식 못해 오류를 내고 멈춘다.] [[1990년대]] 초~중반만 해도 [[아래아 한글]], [[MS-DOS]], [[Microsoft Windows|윈도우]],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훈민정음(워드프로세서)|훈민정음]] 등 많은 프로그램들을 플로피 디스크에 넣어 패키지로 판매했다. MS-DOS 시절에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보급률이 높아 프로그램 패키지를 깔 수단으로서 가장 널리 선호했다.[* CD-ROM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 문제와 호환성 문제로 모든 사용자가 CD-ROM 드라이브를 다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플로피 디스크와 CD를 동시에 판 경우도 있다. [[윈도우 95]]도 CD와 플로피 두 형태로 모두 출시되었다. 여담으로 초창기 CD-ROM은 SCSI 방식으로 출시되었고, 이는 가격이 비싼 SCSI 콘트롤러 또한 있어야 하며, 동시에 해당 콘트롤러의 드라이버를 시스템에 올려야 했는데 이게 또 기종마다 달랐다. CD-ROM이 대중화가 된 것은 표준화되고 저렴한 IDE 방식 CD-ROM이 등장하고 부터이다.] 심지어 상용 프로그램 구매 후에 혹시 모르니까 다른 플로피 디스크에 복사를 해 두라고 권하는 컴퓨터 교재도 있었을 정도다. 왜냐면 플로피 디스크가 고장날 위험이 높았기 때문. 당시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해본 사람은 전부 가지고 있는 기억이 중요할 때 플로피 디스크가 자료를 읽지 못해 망가져서 낭패를 본 것일 정도였고[* 예를 들어 [[신해철]]도 사실상의 데뷔 무대이던 [[대학가요제]] 출전 당시 경험한 바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신서사이저의 플로피 디스크가 읽기 불량을 일으켜 마음 속으로 온갖 신들에게 빌면서(...) 다시 집어넣었더니 다행히 잘 읽혔다고 한다.], 개인적인 보관을 위한 백업은 합법이기도 하므로 충분히 해볼 만한 행위였다. 다만 당시는 플로피 디스크 가격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돈을 아껴보려다가 낭패를 당하는 사람은 늘 있었고, 돈 문제가 없더라도 백업 자체도 번거로운 일이라 게을리했다가 낭패를 보는 사람은 늘 나온다. 이는 플로피 디스크가 주류에서 밀려난지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늘 사람들을 괴롭히는 문제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편 읽고 쓰기가 간편한 장치이기 때문에 불법복제는 그 시절부터 늘 문제가 되었다. 불법 복제 방지 기술도 존재하기는 했으나 기초적인 수준이었다. 이 중 고의적으로 플로피 디스크의 특정 영역에 불량 섹터를 만드는 식의 기술이 널리 쓰였는데[* [[프린세스 메이커 2]]도 이 방식이다. 플로피 디스크 6장이나 되었기 때문에 쉽게 복제하기 힘들었다.],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에 불량 섹터를 일부러 만드는 기능은 없었기에 프로그램에서 이 부분을 읽어보고 오류가 발생하지 않으면 복사본 취급을 할 수 있었기 때문. 물론 복제 기술도 당연히 거기에 맞게 발전했기에 실행 파일을 크랙해서 해당 부분을 제거하거나, 일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아닌 전문 복제 기기를 통해 불량 섹터까지 만들거나, 디스크의 수명이 무한하지 않으므로 데이터 반복 접근을 하는 등의 꼼수를 써서 불량 섹터까지 비슷하게 재현이 가능할 정도로 복제 프로그램이 발전하거나 하는 식으로 서로 경쟁해가며 발전했다. 결국 복사 자체를 어렵게 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컬러 [[복사기]]가 드문 것을 이용해 요상한 색깔을 넣은 매뉴얼의 특정 단어를 물어보는 방식의 프로그램도 나왔고, [[병렬 포트]] 등에 연결하는 하드웨어 키도 있었다.[* 이쪽은 업무용 프로그램에서 많이 사용했다.] 다만 이런 방법을 써도 해커들이 해당 검사를 우회하도록 크랙해 대부분 뚫렸다.[* 애플 II용 게임 프로그램 등은 대부분 불법 복제 방지 검사를 우회하도록 크랙했다. 그래서 한국에 나도는 거의 대부분의 애플 II 게임은 부팅시 화면 어딘가에 cracked by XXXX 같은 문구가 들어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